제72호 청렴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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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죽향초 | 등록일 | 15.09.22 | 조회수 | 2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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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충북교육」 청렴 편지 제72호 > 머리와 수염이 허옇게 세도록 산성을 쌓다 병자호란이 터지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을 하고 청나라 군사들이 산성을 겹겹이 포위했다. 곧 강화도의 방어선이 무너졌고, 포위당한 남한산성도 풍전등화의 위기였다. 그러던 중, 인조가 총애하는 신하 완풍부원군 이서(李曙)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병이 깊어 몸을 움직이기조차 불편한 상황에서 성 위로 올라가 군사들을 독려하다가 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인조가 이 소식을 듣고 크게 통곡하니 그 소리가 성 밖에까지 들렸다고 한다. 그만큼 이서는 인조에게 특별한 신하였던 것이다. 이서는 선조 13년(1580)에 태어났다. 호는 월봉(月峰)이며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선조 36년(1603)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섰고, 광해군 10년(1618)에는 인목대비(仁穆大妃) 폐모론에 반대하여 중형을 받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다. 1623년 김유(金瑬), 이귀(李貴) 등과 인조반정을 주도하여 정사공신 1등으로 완풍부원군에 봉해졌다. 이처럼 이서는 인조에게 총애를 받으며 권세가 매우 높은 신하였지만 다른 권신들처럼 부귀영화에 빠져 지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힘든 일을 자청하였다. 1627년 남한산성에 수어청을 신설하여 스스로 방어사가 되어 성을 쌓았고, 총융사(인조때 설치된 오군영의 하나로 수원, 남양, 장단 등의 군사를 관할하던 총융청의 수정, 종2품)의 책무를 맡아 둔전을 넓게 설치하여 군량을 준비하기도 하였다. 일을 다 끝마치고 나자 나이 오십도 되지 않았는데 수염과 머리가 모두 허옇게 세어버렸다고 한다. 권력의 정점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솔선수범하여 몸을 상하면서까지 나랏일에 힘썼던 것이다. 이외에도 『화포식언해(火砲式諺解)』와『마경어해(馬經諺解)』를 집필하는 등 국방을 튼튼히 하는 일에 온 힘을 쏟았다. 이서가 황해도 곡산군수로 부임했을 때였다. 군대의 무기 창고를 살펴보니 안에 있는 병기들이 숫자만 맞춰져 있지 쓸모도 없이 모두 녹이 슨 채 낡은 상태였다. “여봐라, 이런 병장기들을 대체 어디에 쓴단 말이냐?” “그래도 숫자는 모두 맞습니다.” “아무리 숫자가 맞더라도 다 낡아서 안 맞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느냐? 어찌해서 고치지 않는 것이냐?” “예산이 없어서 그렇사옵니다. 딱히 돈을 끌어올 곳도 없고..” 그러나 황해도는 비록 국경은 아니지만 경기도 바로 위에 있어 국방상 중요한 요충지였다. 이대로 무기를 내버려두었다가는 유사시에 제대로 방비를 할 수가 없었다. 이서는 며칠동안 고민한 끝에 방문을 붙였다. “나의 명령대로 날천산 아래 모여 이틀씩 일을 하는 자들에게는 1년간의 모든 부역을 면해줄 것이다.” 각자의 일이 바쁘고 먹고살기 힘든 백성들에게 모든 부역을 면해준다는 조건은 엄청난 것이었다. 호포까지 면제해준다는 이야기가 있자 백성들은 날천산 아래로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러자 이서는 그들을 산으로 올려 보내 큰 나무를 베어오게 하였다. 그리고는 이 재목들을 황주, 봉산 등지에 내다팔아서 그곳에서는 흔한 면포를 사들였다. 다시 이 면포를 다른 지역에 내다파니 많은 이문이 남았다. 이서는 다시 지시를 내렸다. “이 돈으로 백성들의 품삯을 보전하여 주고 목수와 공인과 대장장이들을 고용하거라.” 곧 각종 병기들을 제작하기 시작하니 활이 1천개나 되고 화살촉이 1만개가 넘었다. 또한 남는 돈으로 군량을 비축한 것이 1천섬이 넘었다고 한다. 이서는 지략을 통해 고을 부자들의 돈을 갹출하거나 백성들을 괴롭히는 일 없이 병기 문제를 해결해 낸 것이다. 만약 이서가 자신의 꾀를 재산을 늘리는 데에 썼다면 아마도 엄청난 부자가 되었을 것이지만, 그는 평생을 단출한 살림살이로 일관했다. 그가 남한산성을 천연의 요새로 만들어놓지 않았다면 인조는 항전도 해보지 못한 채 청군에게 붙들렸을 것이며 삼전도의 치욕보다 더 큰 치욕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높은 지위에 있는 관리일수록 큰 책임이 따르며, 더욱 국가를 위해 매진해야 한다는 것을 이서는 몸소 보여주었다. 출처 - 완풍부원군증영의정시충정이공신도비명, 산성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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