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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기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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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의 날(4월22일)
작성자 유춘봉 등록일 14.04.03 조회수 170
‘정보통신의 날’의 유래는 조선시대 후기 고종(高宗) 18년(1881)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홍영식(洪英植) 등 12명의 시찰단이 4개월간 일본에 머물면서 새로운 제도와 시설을 시찰한 뒤 돌아와서 고종에게 국정개혁의 하나로 신식우편제도의 도입을 건의한 결과, 고종은 이 건의를 받아들여 1884년 4월 22일 왕의 칙명으로 우정총국을 개설하고 홍영식을 우정총판(郵政總辦)으로 임명했다. 고종은 “각국과 통상한 이래 내외의 간섭이 날로 증가하고 관상의 신식(信息)이 따라서 번잡해지니 진실로 그 뜻을 속히 체전(遞傳)하지 않으면 서로 연락하기 멀고 가까운 곳이 일체로 될 수 없다. 이에 명하니 우정총국을 설립, 각 항구에 왕래하는 신서를 맡아 전하고 내지(內地) 우편도 차차 확장해 공공의 이익을 거두도록 하라.”라는 전교를 내렸다. 이것은 우정사업의 개념과 운영방식을 규정한 단초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우정(郵政)의 연혁은 5세기 신라 소지왕 9년(487) 국가공문서의 송달을 위해 사방에 우역(郵驛)을 설치하였고, 고려 의종 3년(1149)에는 봉수제도(烽燧制度)를 두었으며, 고려 원종 15년(1274)에는 마패제도(馬牌制度)를 창설했고, 조선 선조 30년(1597)에는 파발제도(擺撥制度)를 두었다. 하지만 민간을 위한 우편제도는 발달하지 못했으며, 개인간 인편에 의한 우편이 주로 이루어졌을 뿐이다.

우정총국은 개설된 해인 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甲申政變)으로 홍영식 등 개화당 정객들이 숙청되자 폐지되어 우편제도가 일시 중단되었다가, 1895년 통신원과 우체사(郵遞司)가 설치되어 우편제도가 부활하였다. 조선 광무 3년(1900)에는 만국우편연합기구(UPU)에 참가했으나, 1905년 한일통신합동 운영협정이 체결되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체신부가 통신사업을 운영하게 되었고, 1949년 만국우편연합기구에 재가입했다. 1956년 이승만 정부는 1884년 4월 22일 우정총국이 개설된 날을 기념하여 ‘체신의 날’을 정했으며, 1973년 3월 30일 대통령령으로 ‘각종기념일등에관한규정’으로 정식 공포, 시행하여 오다가 체신부가 정보통신부로 거듭난 1994년 이후에 ‘정보통신의 날’로 이름을 바꾸었다.

우리나라 체신제도는 1970년대 이래 비약적인 도약을 거듭하여 1970년 6월 2일에는 금산(錦山) 위성통신국의 개통으로 전 세계와 연결되어 통신의 획기적인 향상은 물론 TV 우주중계의 길이 열렸다. 1971년 3월 31일에는 장거리자동전화(D.D.D.) 개통, 그리고 1972년의 직통회선 구성 등으로 전천후 통신망이 구축되었다. 1995년 정보화 고속도로 건설에 착수한 이래 5년 만인 2000년 12월에는 전국 144 지역에 초고속 정보통신망이 구성되어 우리나라 초고속 인터넷 인구는 2004년 말 현재 1천 2백만 명 수준으로 세계 정상급 인터넷 이용 국가가 되었다. 또 이동전화 인구도 3천 7백만 명 시대에 들어섰고, 유선과 무선의 통합, 방송과 통신의 융합, 인터넷과 이동전화의 결합으로 우리나라 정보통신은 빠른 걸음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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