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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기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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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독립운동기념일(11월3일)
작성자 유춘봉 등록일 14.11.03 조회수 129

정의

항일 학생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켜서 학생들의 자율 역량과 애국심을 함양시키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 매년 11월 3일이다.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은 1953년에 ‘학생의 날(-)’이라는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이래 부침을 거듭하다가, 2006년 2월 9일 국회에서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명칭 변경이 의결되었다.

유래

1929년에 일제에 항거하고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는 학생운동이 발생했다. ‘광주학생운동()’으로 명명되었던 이 사건은 1929년 11월에 광주에서 촉발되어 1930년 3월까지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항일 학생운동은 1920년부터 지속적으로 발발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활동들이 축적되어오다가 1929년 11월에 크게 폭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1월 3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이날 광주역 앞에서 한일 학생들 사이에 큰 충돌이 발생했고, 이를 이유로 일제가 10일 간의 휴교령을 내렸던 것에 기인한다.
광복 이후 11월 3일은 항일과 반제, 독립을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의 기념일이 되어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1953년 10월에는 제2대 국회가 이날을 학생의 날로 지정하면서 그 의미가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나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학생의 날은 점차 억압되고 축소되었다. 이를 대신하여 군사정부는 1945년에 발생한 ‘신의주학생의거()’를 기념하여 1956년에 11월 23일로 지정되었던 ‘반공학생의 날’을 강조하였다. 그리하여 한동안 두 개의 학생의 날이 병존했으나, 1973년 3월 30일에 제정, 공포된 ‘각종기념일등에관한규정’에 따라 모든 학생의 날이 폐지되었다. 학생의 날이 폐지된 이유들 가운데 하나로 1973년에 광주의 고등학생들이 유신 철폐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학생의 날이 폐지된 이후에도 재야단체와 학생들이 이날을 전후하여 기념식을 거행하고, 반정부 시위를 벌이자 학생들의 기념탑 참배도 금지되었다.
1970년대 말부터 학생의 날이 부활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등장하고, 학생들이 참여한 독립정신의 의미를 애국심의 증대로 발현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84년 9월 22일에 학생의 날이 국가기념일로 부활하였다. 학생의 날은 교육인적자원부가 주관하여 기념 행사를 개최하고 있으며, 2006년에 “학생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발전시켜 애국심 함양을 고취하고 역사적 의미를 계승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한다”는 이유로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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